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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고 있었고, 각 연방이 해체되는 상황 속에서 정치와 경제 모두 혼란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도의 러시아는 한참 암흑기를 거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식량이 없어 빵을 사기위해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고, 상상 이상의 추운 날씨로 인해 생활에 불편함도 많았죠.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발레 때문이었어요. 러시아에서 새롭게 체험하는 발레는 하루하루 저를 엄청난 설렘과 행복 속으로 인도했습니다. 러시아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거릴 만큼 저에게 새로운 발레의 세계를 보여준 곳이자 다양한 배움의 기회들로 가득 채워진 신세계였지요. 발레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배움을 얻은 시간들이었기에 발레는 제 삶의 전부가 되었고, 매일매일 너무 행복했어요.” 유희라 씨의 기억 속에 러시아는 그야말로 ‘발레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택시기사를 비롯해 작은 상점의 주인들,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시 유명한 발레리나와 공연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고 한다. 또한 휴일에 하루 종일 방송 매체를 통해 발레공연을 내보낼 정도로 도시 구석구석에 발레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는 나라였다. 이곳에서 그녀는 세계에서 3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5대 발레단 중의 하나인 ‘키로프마린스키발레단’에서 활동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당시 러시아 발레단에서는 외국인을 무대에 세우는 일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정식 단원으로 들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적인 발레리나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정식 단원 못지않은 많은 배움의 시간들을 가졌고, 그 시간들이 지금까지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배움에 대한 넘치는 열정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어느 날, 한국학을 전공한 전 러시아인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예술가 집안의 독자였던 그와 함께 발레공연장과 미술관 등을 함께 다니고 공유하며 예술인으로의 삶을 그려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당시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간 직후 가정이 깨어지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 이국 땅에서 혼자 외롭게 살았던 경험이 있었던 그녀에게 또다시 혼자 남게 된 아픔은 상상 이상으로 컸으리라. 물론 당시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딸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 딸과 함께 낯선 호주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크고 작은 어려운 시간들 속에서 남몰래 우는 날도 많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발레를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발레는 영어가 그리 능숙하지 않아도 동작만으로 이야기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직장을 잡을 수 있었어요. 용기를 가지고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무용학교 원장님을 직접 찾아가 저를 강사로 써달라고 다부지게 요청 드렸지요. 그랬더니 그 분이 우선 자신의 수업에 들어와 실력을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감사하게도 그 수업 직후 바로 티칭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셨어요. 심지어


초급반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했는데 고급반을 가르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결코 잊을 수 없는 감사한 분이랍니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파트타임 무용수로 활동 했던 ‘Camber Dance Theater’에서 공연을 위한 댄스 연습을 했다. 특별히 1997년부터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이 열리기까지 호주 올림픽 체조 대표팀을 새벽 5시부터 10시까지 가르치기도 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며 숨쉴 틈 없이 바쁘게 지냈던 그녀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슴 속에 품었던 꿈 하나는 결코 꺾이지 않았는데, 바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무용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과 호주의 국제 교류제단의 도움을 통해 그녀의 작은 소망은 결실을 맺게 되어 ‘Hee Ra Yoo Dance Company’가 시작되었다. 낯선 땅에서 적응해 가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무렵 그녀는 최고의 행운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다. 당시 남편은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호주에서 박사 후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 기간에 열렬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그녀는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물론 발레를 향한 그녀의 사랑과 열정은 한국, 러시아, 호주에 이어 네 번째 거주지인 미국에서도 계속 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샌디에고 발레단에서의 활동을 시작으로, 2004년 결혼과 함께 뉴올리언즈로 거주지를 옮겨 Tulane 대학에서 무용 강사로 가르치며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고, 결국 현대무용과 안무로 유명한 NYU 석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과감하게 정리한 후 2007년,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몸으로 표현하는 일상 “안무는 음악으로 말하면 작곡과도 같아요. 저는 하나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그 곡을 만들어낸 작곡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싹트곤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음악노트 하나하나를 가지고 공을 들여서 하나의 곡을 완성시키는 것에 대한 신비감 때문이었어요. 무용에서


May 2012 PEOPLE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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