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ge contains a Flash digital edition of a book.
상태였다. 사회에, 예술계에, 자신이 다니는 과에 조금씩 불만이 생기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모임을 갖는 등 이런저런 돌파구를 찾던 김미라씨에게 어느 날 눈에 확 뜨이는 수업이 있었다. “대학 3학년 때였어요. ‘동작분석’이라는 과목을 듣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기초 단계였는데, 막 외국에서 유학하고 오신 선생님의 그 수업이 제 눈에 확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 길로 학교 도서관에 가서 ‘라바노테이션’이라는 영어원서를 빌려다가 여름방학 내내 독학을 했지요. 그렇게 그 책을 독파하면서 라바노테이션이 너무 재미있고 또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 4학년 때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준비를 시작했지요. 한국에서는 공부할 수 없는 분야였거든요.” 라바노테이션은 이론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배우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습득한 이론을 검증 받는데도 초급 ∙ 중급 ∙


고급 세 단계로 나뉜다. 사람의 움직임을 굳이 음악과 비교하자면 동시에 한꺼번에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와 같아서 각 악기 파트를 따로 표시하듯 각 신체부위의 움직임을 따로 다뤄야 한다고. 이런 어려운 이론을 김미라씨는 독학해서 대학 4학년 때 세계무용기록사무국에서 시행하는 공인 라바노테이션 초급 이론시험을 당당히 통과했다. 이를 발판으로 그녀는 라바노테이션의 중심지로 불리는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해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22 PEOPLE August 2012


무용기보가의 시작,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라바노테이션 공부를 목표로 들어간 대학원은 김미라씨에게 오히려 무용의 다양한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다. 한국에서 경험한 대학 무용과의 생활과는 달리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자유로웠고 실험적이었다. 그렇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김미라씨는 박사과정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한국에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대학원 생활이 1년쯤 지났을 때, 김미라씨는 라바노테이션뿐 아니라 공연하고 안무하고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이런 모든 걸 너무나 열심히 즐기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했다. “미국에 와있는 동안 하고 싶은 걸 더 하자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박사과정을 바로 입학하지 말고 뉴욕에 가서 공연도 하고 창작작업도 많이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마침 제가 석사를 졸업할 때쯤 뉴욕의 세계무용기록사무국에 파트타임 자리가 하나 생긴 거예요. 옛날에 손으로 그린 무보들을 ‘라반 라이터(Laban Writer)’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이었어요. 평소에 제가 지도교수님께 뉴욕에 가서 무용활동을 더 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었는데, 다행히도 그런 저를 기억하시고 그 자리에 추천해주셨어요.” 그렇게 뉴욕으로 온 그녀는 파트타임으로 일도 하면서 공연도 하고, 무용 수업도 듣고, 독립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도 하는 등 정신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모든 게 잠시 지나가는 과정이려니 했는데, 무용기보가가 되는 것이 김미라씨의 운명이었을까?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세계무용기록사무국에서 그녀를 정식직원으로 채용했을 뿐 아니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김미라씨가 미국에 머물며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전문 무용기보가로 거듭 태어나다 세계무용기록사무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 한지 2~3년 됐을 때, 김미라씨는 회사의 제안으로 전문 무용기보가(Certified Notator) 훈련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라바노테이션 이론이야 대학원 시절 수업을 통해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을 모두 끝냈지만 전문 무용기보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계무용기록사무국이 시행하는 공인 이론시험들을 모두 통과해야만 그 훈련과정에 입문할 자격이 주어진다. 초급과 중급이론은 이미 합격되어있던 상황이라 괜찮았지만, 고급 이론시험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과정들을 모두 마친 후에야 전문 무용기보가 훈련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게 벌써 4년 전인데, 워낙 쉽지 않은 과정이다 보니 이제야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과정이 Certified Score라는 난이도 있는 무보를 스스로 제작하는 것인데, 시간이 몇 년씩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혼자와의 싸움이 매우 치열한 작업이라 여기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렇다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을 왜 하는 걸까? “열정과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 무용이라는 인간의 가치있는 창작물을 기록으로 보존한다는 그런 자부심. 어렵고 힘든 걸 떠나서 무한한 관심과 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런 그녀에게도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본인이 그린 무보가 다시 무대 위에서 작품으로 살아났을 때다. 세계무용기록사무국 도서관 서랍 안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가 그녀가 그린 작품을 빌려가고, 읽어보고, 다시 무대 위에 올리는 걸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세계무용기록사무국에서 종이로 된 무보들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기술자로서만이 아니라, 전문 무용기보가로, 또 라바노테이션 이론을 가르치는 전문 강사로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결혼, 그리고 새로운 터전 미국 오하이오와 뉴욕은 김미라씨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하나가 대학원 유학시절 기숙사 옆방에 살며 친하게 지냈던 말레이시아 친구와의 인연이다. 김미라씨가 석사를 취득한 후 뉴욕으로 올 때쯤 그 친구 역시 뉴저지에 직장을 잡아 비슷한 시기에 함께 왔다. 낯선 곳에서 연락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친구는 동료들과 함께 하는 래프팅(rafting) 모임에 김미라씨를 초대했고, 그곳에서 그녀는 운명처럼 지금의


Page 1  |  Page 2  |  Page 3  |  Page 4  |  Page 5  |  Page 6  |  Page 7  |  Page 8  |  Page 9  |  Page 10  |  Page 11  |  Page 12  |  Page 13  |  Page 14  |  Page 15  |  Page 16  |  Page 17  |  Page 18  |  Page 19  |  Page 20  |  Page 21  |  Page 22  |  Page 23  |  Page 24  |  Page 25  |  Page 26  |  Page 27  |  Page 28  |  Page 29  |  Page 30  |  Page 31  |  Page 32  |  Page 33  |  Page 34  |  Page 35  |  Page 36  |  Page 37  |  Page 38  |  Page 39  |  Page 40  |  Page 41  |  Page 42  |  Page 43  |  Page 44  |  Page 45  |  Page 46  |  Page 47  |  Page 48  |  Page 49  |  Page 50  |  Page 51  |  Page 52  |  Page 53  |  Page 54  |  Page 55  |  Page 56  |  Page 57  |  Page 58  |  Page 59  |  Page 60  |  Page 61  |  Page 62  |  Page 63  |  Page 64  |  Page 65  |  Page 66  |  Page 67  |  Page 68  |  Page 69  |  Page 70  |  Page 71  |  Page 72  |  Page 73  |  Page 74  |  Page 75  |  Page 76  |  Page 77  |  Page 78  |  Page 79  |  Page 80  |  Page 81  |  Page 82  |  Page 83  |  Page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