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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저희 사무실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연예인도 아니고, 그냥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일 뿐입니다. 그런 데 그러다가 먹고 살기 위해 낸 광고로 많은 분이 저를 찾아 주시 고… 제가 조금은 유명해졌나요? (웃음) 그동안 어떻게 하면 제가 얻은 이유명세(?)를 잘 소화를 할까,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더 많 은 혜택을 줄까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박 변호사는 ‘요 즘 박 변호사님과 관련해 좋은 소식이 많이 들린다.’는 인사말에, “개인적으로 우리 가정은 무척 행복합니다. 우리 아들도 아빠가 ‘ 강력한’ 변호사라고 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고, 제 아내도 행복해하며, 고맙다고 잘 다녀오라고 매일 아침 볼에 뽀뽀해줍니 다.”라고 선뜻 가족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 를 들어보자. “하지만 사회적으로 외롭고 힘든 사람이 많은데, 그 분들에게는 ‘강력한’ 변호사로서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치가도 아니고, 커뮤니티 리더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많은 유명인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기부 단체에서 봉사하는 것을 보았어요. 저도 조금은 유명한 사람이 되 었는데, 저와 뜻이 같은 분들이 힘을 모아서 한인 사회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인 사회의 미래에 대한 동기 부여: 앤드류 박 장학재단 “전에도 기부를 조금씩 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뜻있는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인 사회의 미래에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할 것인가를 생각했는데, 특히 어린 학생들이 가진 한인 사회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 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 2세, 3세뿐 아니라, 유학생까지 도 그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지 공부만 잘한다거 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의 미래에 대 한 확실한 꿈과 포부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을 위해 장학금을 주는 것이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선발할 때, 제 출하게 되어있는 에세이를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현재 총 11분의 장학재단 자문위원들을 선발했는데, 그분들이 재단의 모 든 일을 위임해서 학생 선발 등의 일을 해주실 것입니다. 올해에 는, 총 8명의 학생이 3천 달러씩 장학금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이번에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학생들이 궁금해졌 다. 박 변호사는 일단 가장 부모님께서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 할 수 있는 대학 신입생, 그리고 현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주요 대상이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유학생들도 포함했는데, 그 이유 는, 많은 유학생이 졸업한 후, 한인 사회에서 H-1 비자를 받고 교 포사회의 일원이 되기 때문이고, 또 한국에 돌아가서도 우리 교민 사회와 교류를 원활하게 하기를 바래서 라고 한다. “제 스스로 이 민자의 자식으로서, 역시 대학교를 다닐 때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 녔는데요, 이렇게 그때 받은 도움을 다음 세대에 되돌릴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동안에도 크고 작게 기부를 많이 해 온 박 변호사는 지난번에 플러싱 경로 센터가 재정난에 어 려워서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말에 그의 부모님이 생각이 나면서,


한미 충효회에 기금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과 장학재단 발대식에서 자문위원들과 함께 함 께 하고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 5월에도 한미충효회에도 5,000달러의 기금을 전달했다. “기부 할 수 있는 저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아내와 부 모님, 그리고 제 아들이 나의 기부 활동을 지지 않으면 힘들었을 텐데, 다행히 흔쾌히 성원하고 지지해줍니다.”


가족은 나의 힘: 어릴 적부터 받아온 진정한 아이비리그 교육 그렇다면, 박 변호사의 가족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초등학생 아 들이 하나 있습니다. 저도 제 아들이 나중에 자라나서 전문가가 되 기를 바랍니다만, 요즘 겉모습만 명문인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명문이라는 껍데기뿐만이 아닌 진정한 명문 교육을 받았는데요, 아이비리그 대학이 아닌, 저희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교육이 그것 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교육을 저도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습 니다.” 그런 박 변호사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강력한 변호사 도 부모님이 있습니다. (웃음) 한인 사회에서 교육은 너무도 중요 합니다. 저도 아이비리그를 나왔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을 받은 곳이 바로 저의 가정입니다. 저의 부모님이야말로 아이비리 그보다 더 소중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것은 부모가 보여준 ‘모 범과 화목’입니다. 저희 아버님께서 처음으로 미국을 온 것이 70 년대입니다. 그때에는 영주권 따기가 어려워서 아버지가 먼저 미 국으로 어고, 우리 가족은 4년 동안 헤어져서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동안에 우리 어머니는 시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


July 2013 PEOPLE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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