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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경쟁력 있는 미국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심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도 몇 번, NAKS의 동북부협의회 행사나 협의회 학회에 갈 때면 뵙게 되는 선생님께 나도 모르게 쪼 르르 달려가게 된다. 신생 학교의 선생님으로서 학교 행정과 교실 에서 학생들의 주목을 조금이라도 오래 끌 수 있는 비결을 전수받 기 위해 작은 특강 세미나를 열었을 때에도, 선생님은 지하철과 버 스를 고집하시며 맨하탄에서 멀리 있는 학교까지 오셨고, 이번 인 터뷰로 선생님 댁을 갈 때도 어떻게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뉴저지에 서 맨하탄으로 오는지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이런 허 선생 님이야말로 진정한 뉴욕커 이다. “막힐 염려도 없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속시각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편한 게 어디 있겠어요?” 선생님은 대중교통 예찬론을 피셨다. 선생님은 오랫동 안 맨하탄에 사셨지만, 늘 첼시에 사시길 꿈꿔 오셨다고 한다. “난 미술을 무척 좋아해요. 내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집 바로 앞 이 유명한 갤러리이고 각종 전시가 일 년 내내 열리는 곳이잖아요.”


교육자로 평생을 살다 선생님은 1926년에 맏딸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셨다. 선생님의 거실과 침실에는 어릴 적 찍은 사진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 봐도 세 련된 옷차림과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선생님의 아버지는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야만 남편을 이해할 수 있다, 여자도 경제력이 있어 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여자도 일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조언하 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일제강점기인 1944년 경성여자 사범을 졸 업하며 일본인 150명, 한국인 50명 총 200명 졸업생 중 1등을 했 다고 한다. 그것은 ‘거창한 조국애라기보다는 그저 일본인에게 지 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하신다. 해방되자 한국어를 잘 모르는 딸을 위해 선생님의 아버지는 국어사전을 손수 만드셨고, 선생님 은 그렇게 우리말을 공부했다고 하신다. 18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 로 교단에 서서 수업을 했고, 1959년 국비 장학생으로 테네시 조 지 피바디 사범대학으로 유학을 와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 PEOPLE June 2013


다시 한국에 가서 이대 부속 초등학교에서 근무했고, 64년 미국으 로 온 후 수천, 수만 명 뉴욕 어린이와 어른의 스승이 되어 모두 68 년간 교단을 떠나지 않으신 것이다. 낮에는 미국유치원 교사, 밤에 는 맨하탄 뱅크스트릿 교육대학원 석사과정에, 주말에는 뉴욕 한 인교회와 퀸즈 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를 하던 중, 1973년 7명의 이사와 뜻을 모아서 브롱스 리버데일의 JFK 하이스쿨에 매주 토요 일 뉴욕 한국학교 문을 열게 되었다. 이것이 선생님의 일생이 함께 한 뉴욕한국학교의 간단한 역사이다.


선생님표의 김 샌드위치와 커피 “어서 먹어 봐요… 그냥 평범한 샌드위치를 만들까 하다가… 내가,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해 보잖아요? 치즈와 잼 사이에 김을 넣어 봤 어요.” 선생님의 김-치즈-잼 샌드위치는 정말 신기하게도 맛이 있 었다. 바삭하게 토스트한 식빵에 달콤한 잼을 바르고 치즈를 한 장 얹어서 고소함을 주고, 거기에 구워서 소금을 살짝 뿌린 김의 향긋 한 풍미와 짭짤함이 생각보다 잘 어울렸다. 사이드로 준비하신 셀 러리도 한 입 베어 먹으니, 처음 먹어보는 조합의 궁합이 꽤 어울렸 다. “선생님, 어떻게 김을 넣을 생각을 하셨어요?” 하고 웃으면서 여쭤 보았다. “난 그냥 그때그때 있는 것들로 조화를 꾀해 보려고 많이 시도하는 편이에요. 여기 그림들 보이시죠? 이게 사실은 처음 부터 캠퍼스나 도화지가 아니었어요. 다 다른 용도로 사용되던 것 들이죠. 전부 다 리사이클 한 작품들이에요.” 선생님 거실에는 벽 면 가득히 크고 작은 추상화가 여러 점 걸려 있는데 이게 모두 리사 이클 한 작품들이라니… 우리 선생님은 천재임에 틀림없다. 선생 님의 미술도 특이한 점이 많다. 검정 테이프를 캔버스에 붙여서 완 성하기도 하고, 레디에이터를 덮은 상자가 보기 안 좋아서 미니멀 아트풍의 작품이 탄생하고, 처음에 언급했던 스크린은 한글이 들 어간 아방가르드한 인테리어 장식이 되었다. 아이들을 좋아하시는 데 혼자 사시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선생님은 독신주의 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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