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I INTERVIEW
한국 패션의 역사를 다시 쓰다 전 FIT 학무처장 김영자 교수
따사로운 햇살과 활짝 피어난 꽃들이 키 낮은 돌담 길을 더욱 선명하게 물들인 그린위치 커네티컷에서 봄의 따스 함과 온화함을 닮은 김영자 교수와의 만남을 가졌다. 화려하게 채색된 장미, 모란, 수국, 등 꽃의 정원을 지나 빨 간 대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의 집안 풍경은 말 그대로 또 다른 세상의 시작 같았다.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듯 여기저기 걸려있는 유명 작가들의 그림과 유럽풍의 가구들로 꾸며진 그녀의 집은 보는 이로 눈을 완전히 사로잡 기 충분했다. 동서양을 대표하는 미의 장점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인테리어에서 그녀가 왜 지난 40여 년간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패션계의 동양인 리더로 살아올 수 있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동양의 미 덕과 서양의 리더십이 한데 어우러진 시대의 선도자였다.
미국 땅에 피어나는 한국의 꽃 김영자 교수가 줄곧 가져왔던 한 가지 작은 바램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었 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서는 그러한 평범함 가운데서도 조금은 비범 한 삶을 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그녀는 경기여 고 졸업 후, 바로 서울대 미술학과로 진학하 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당시 한국 의 사회적인 분위기와 함께 남녀공학에는 절
24 PEOPLE June 2012
대로 보내지 않겠다는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 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결국 방향을 틀어 이화여대 영문학과로 진학하게 된다. 그 후 1968년 남편을 만나 함께 컬럼비아 대학원 에서 공부하게 되면서 처음 뉴욕 땅을 밟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뉴욕의 첫 인상 은 기대와는 달리 실망투성이었다. 숨이 턱 턱 막힐 정도로 길게 늘어선 회색빛 건물들과 그 안에 빼곡히 모여 사는 사람들의 풍경이 너무나 답답하고 삭막해 보이기까지 했다.
패션은 삶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기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그저 6.25 전쟁이 일어났던, 일본 옆에 있는 조그만 나라로만 알려져 있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도 미국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쉽지 않았지만 미국에 서는 한국에 대한 정보나 이미지 자체가 존재 하지 않았 다고 한다. “‘럭키 골드사’ 텍스타일 부분 책임자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일본 사람이 한국의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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