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송도 하는 등 위옥환 씨와 장화인 씨가 결성한 여성취미클럽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이후 “백합주부클럽”이 되었고, 1980년 당시 열 명으로 구성됐던 백합주부클럽이 바로 현재 AWCA의 시작이다.
최초로 뉴저지 한인 YWCA를 만들다
백합주부클럽으로 활동하던 즈음, 위옥환 씨와 장화인 씨는 한인 YWCA를 만드는 것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장화인 씨는 학생시절 이화여대에서 YWCA 회장을 역임했었고, 뉴욕 플러싱에 위치한 퀸즈 YWCA의 창립멤버로도 활동했던 만큼 뉴저지에도 YWCA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성봉사단체에 대한 장화인 씨의 꿈을 전해 들으며 사회사업을 전공한 위옥환 씨 역시 뉴저지 YWCA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동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뉴저지 YWCA에 대한 꿈을 키워가던 어느 날이었다. “예전에 광주 YMCA에서 활동하셨다는 한 장로님께서 어느 날 여성들이 이런 YWCA를 해야 한다고, 뜻있는 사람 몇몇을 모아놨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백합주부클럽과 그분이 말씀하신 분들이 함께 모여 의논하고, 그렇게 해서 1984년에 뉴저지 한인 YWCA가 정식으로 생겼죠.” 장화인 씨 집 헛간을 아지트 삼아 그렇게 시작한 뉴저지 한인 YWCA는 당시 독자적으로 등록된 단체는 아니었고, New American’s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몽클레어 YWCA에 속한 산하기관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1987년에 뉴저지 한인 YWCA는 회원들이 많이 사는 버겐카운티 YWCA로 옮기게 되었다.
삼각형의 또 다른 꼭지점, 강윤희
강윤희 씨는 위옥화, 장화인 씨보다 한참 후인 1989년에 뉴저지 한인 YWCA에 합류했다. 원래는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1973년에 LA에 왔다가 2년 후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후에 남편이 뉴욕 쪽에 다시 주재원으로 오게 되면서 함께 오게 되었다.
October 2012 PEOPLE 23 2대 이사장 강윤희
당시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서 만난 이가 바로 위옥환 씨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강윤희 씨가 본격적으로 뉴저지 한인 YWCA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9년에 개설된 가정상담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때 가정상담소 초대 소장이 위옥환 씨였다. “백합주부클럽 시절에 한국 최초의 여성변호사인 이태영 박사를 강사로 모셔서 강의도 듣고 그랬거든요. 그분이 저희 후배들을 인정하시고, 가정상담소가 이곳에도 필요하니 반드시 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셔서 시작하게 됐죠. 정말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당시 강윤희 씨는 가정상담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은 하고 있었지만 주재원 아내로서 3년 후면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는 생각에 다른 YWCA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가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미국에서 계속 책임을 맡게 되고 더 머물게 되면서 강윤희 씨는 위옥환 씨를 도와 가정상담소 부소장으로 일하는
코리안을 넘어 아시안을 품다
미국 YWCA 산하기관으로 활동하며 20년을 지내던 뉴저지 한인 YWCA는 지난 2004년에 AWCA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독립하였다. “미국 YWCA 산하에 있다 보니 일단은 서류며 예산이며 행정적으로 여러 가지가 불편했어요. 또한 산하기관이니만큼 그쪽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는데, 위치도 교포들한테 먼 리지우드에 있었고, 게다가 우리 일이 많아 양쪽을 병행하기가 힘들었죠. 무엇보다도 미국 YWCA에서 보기에 우리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수업을 한다, 노인학교를 한다, 양로원을 방문한다, 합창단을 한다 그러면서 프로그램도 많이 하고 활동도 활발히 하는것 같으니까, 도리어 저희가 기관 등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독립할 것을 강력하게 권했어요.” 그렇게 미국 YWCA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독립한 뉴저지 한인 YWCA는 새로운 기관명으로 AWCA(Asian Women’s Christian Association)를 선택하였다.
등 적극적으로 YWCA 활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노력은 처음 지인의 병원 사무실에서 전화기 한대를 놓고 상담할 사람의 전화가 오기를 기다리던 가정상담소를 이제는 일년에 약 1000건 이상의 상담을 해결하는 가정상담소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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